여성

폐암 말기

수술, 항암, 요양

지난 해, 엄마가 암에 걸리셨다며 집에 내려오라는 얘길 오빠에게 들었다.

'왜 갑자기 우리 엄마가 암에?'

엄마가 받아들이실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머리속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이미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엄마의 얼굴을 창백하고 핼쑥했다
나는 속으로 말 할 수 없게 괴로웠지만, 엄마에게 말했다.

 

"수술하면 좋아질거야"

 

가족들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는 엄마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 가족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의사는 말했다.
엄마의 폐암이 여러 곳으로 전이되었고, 말기이며
기껏해야 8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내 마음속에서 연약한 사람이었다.
우리 4남매가 어릴 때부터 클 때까지
다른 엄마들처럼 야단스럽게 키우지도 않았고,
8살이나 많은 사려 깊은 아버지의 살핌 속에 곱게 살아오셨다,

 

힘든 일도 해본 적이 없는 우리 엄마가 불치의 병에 걸렸으니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수술 후 엄마는 집에 돌아와 한 달 넘게 요양을 했다.
엄마는 병원에서 암에 대해 많이 듣고 보아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는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약간 뚱뚱한 편이었지만, 수술 후 체중이 급속도로 줄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고, 걸을 때도 땅을 솜덩이 밟듯 걸었다.
화학치료로 감염에, 심장 발작도 있어 병원을 다시 찾게 됐다.

마흔이 넘은 큰 오빠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보았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남은 생에 열심히 살기로 결심하셨다.
가족들은 엄마의 뜻을 존중했다.
 

퇴원 후 엄마는 바쁘게 살았다.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저녁 식사 후 매일 산책도 하셨다
.
어느 날은 산책하던 어머니의 귀가가 늦어 아버지가 어머니를 걱정했다
.

당신은 환자인데 어찌 이리 늦는가? 산책은 길어야 30분하고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자 엄마는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나를 환자로 보지 마세요. 그러면 자꾸 나의 병을 생각하게 돼요. 나에게 병을 말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환자라는 것도 잊을 수 있어요."

 

나는 엄마의 말에 너무도 놀랐다.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는

언제 저렇게 투병에 대하여 확실한 마음의 준비를 했을까.

엄마는 말했다.

"사람 사는 의미는 길고 짧은데 있는 것이 아니다. 즐겁게 살면 된다."

 

우리 엄마는 환자임에도 마음은 연약하지 않았다.

엄마는 인생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엄마의 이런 마음이 암을 견뎌내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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