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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낭암,담도암 극복기 조회수 : 3419
강석진  (기타) 2018-06-19 오후 9:31:08

 

6개월 선고받고 246개월을 살고 있습니다.

그 해 6월은 뜨거웠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날씨로 기록된 한 해 였다.

언론도 뜨거웠다. 각 지상파 방송사 도,언론사 신문 지면까지도 그 해 날씨만큼이나 열을 뿜고 있었다,

199478일 그날은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한 날이었다.

나는 1991년 담낭암 수술에 이어 3년 만에 또 두 번째 담도암 말기 진단을 받는 날 이기도 했다.

 푹푹 찌는 폭염도, 온 나라가 김일성 사망뉴스로 귓전을 때려도 나의 가슴은 터질 것 같은 울분으로 가득 찾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의 고통을 두 번씩이나 겪게 하는 것인가.

아스팔트를 녹일듣한 뜨거운 태양도 김일성의 죽음도 나에겐 관심밖의 일이였다.

임신 9개월의 만삭의 아내를 두고 죽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1년 내나이 29세 미혼일때의 수술대 싸늘한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을 하고 만삭의 아내를 뒤로하고 수술실로 끌려 들어가는 나의 두눈에 눈물이 흘렀다.

 

수술실에서 산소호흡기에 가쁜호흡을 의지하며 중환자 실로 옴겨지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듯 희미한 의식속에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보고싶었다.아내와 뱃속의 아이가 걱정됐다.

또다시 눈물이 흐르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상황이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큰형님께서는 고향으로 급히내려와 가족묘지를 통합해 조성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하셨다고 했다.

그런 큰형님께선 2005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48회의 항암을 끝으로 당신께서 조성해 놓으신 가족묘지에 먼저 잠들에 계신다.

가슴이 먹먹해 온다.

 

나는 수술 후 항암 운운하는 것을 거부하고 퇴원을 했다.

찢어질듯한 통증과 진통제와 복대 없인 한발자욱도 걷지못하는 서른셋의 예비 아빠의 절규.

날이 갈수록 몸무게는 빠지고 야위어만 갔다.

그도 그럴것이 담도암이란 외과적 수술이 방대 했다.

수술실로 들어간 뒤 12시간을 넘겨 수술을 했다.

2/3절제,십이지장 전 적출,소장2/3적출,췌장머리부분절제,담도 등 담낭은 3년전에 적출

의식을 마취시켜 난도질을 해댔으니 정상일 리가 없지 않는가.

 

아이가 태어났다.

퇴원후 보름만의 일이였다.

복대를 하고 진통제를 복용하고 힘없는 노인의 등굽은 허리를 하고서 아이를 봤다.

눈물이 또 났다.

엄마가 보고싶었다.

 

핏덩이 아이를 두고 이대로 죽을수는 없었다.

산후조리도 하지 못한채 아내는 나를 데리고 서울 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가야만했다.

양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아들은 병원에 맡기고 갔다.

꼭 살아서 전정 아빠가 되리라 다짐했다.

 

걸어야 했다.

30m,50m부터 시작했다.

좋은숲을 찾아 멀리 날설수는 없었다.체력이 바닥을 치고있으니 말이다.

가까운 순천 죽도봉 공원을 찾았다.

어느 노부부 께서 손을잡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젊은 엄마는 아이의 손을잡고 연신 웃으며 걷고 있다.

어느덧 9월도 중순을 넘기고 있었다.

뜨겁고 후텁지근한 무더위도 한풀꺽이고 솔잎 매미 울음 소리가 요한히 귓전을 때렸다.

예전엔 소음으로 들렸던 매미 울음소리가 아륾다운 멜로디로 들렸다,

젊은 엄마와 아장아장 걷고있는 모습에서 일년후의 나를 봤다.

내 아들도 곧 걸을 수 있을테니까.

늙은 노부부의 맞잡고 걷는 다소 불편한 걸음걸이에서 나의 미래를 봤다.

나도 반드시 암을극복하고 저들이 지금 느끼고 있을 행복감을 맛보리라 다짐했다.

 

숨가쁘게 여름이가고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지나니 또 봄이 왔다.

체력은 조금씩 좋아지는듯하나 가끔씩오는 통증은 여전하다.

숨통을 막을듣한 통증앞에선 아내도 별 도리가 없었다.

그저 물 한 컵 들고 호흡이 진정될때까지 기다렸다 물컵을 내게 건내고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줄뿐 육신의 아픔을 대신할수 없음이 가족이 느끼는 미안함일수도 있겠다 싶다.

 

한두시간 운전대를 잡아도 될 정도의 체력이 돌아왔다.

나는 순천 조계산편백숲과 광양의 백운산휴양림을 오가며 매일매일 기본에 충실했다.

맨발로 걷고 호흡하고 숨이 차면 주저앉아 아들을 생각했다.

통증은 와도 나의 입가엔 미소한가득

 

19959월 어느날

그날도 나는 1사간을 운전해 조계산 송광사를 찾았다.

어느 아주머니께서 나의사정을 듣고

조계산 숲속에서 한봉벌꿀을 치는 사장님을 소개했다.

숲에서 6개월 정도 한봉벌통을 관리하며 요양을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다.

하루종일 숲에서 지낼수가 있었다.

이날부터 숲에서의 일상은 시작되었다.

산림치유 바로 그것이었다.

숲에서 먹고,숲길을 걷고,숲에서 이야기 하고,숲에서 노래하고 ,춤추고,숲에서 잠들고,숲에서 아침을 맞이한 시간이 어느덪 약속한 6개월이 지나 그해 추석날이 되었다.

나의건강은 몰라보게 회복되었다.

암을극복할수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

숲속생활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니 잠들고 아침을 맞이하는 일 말고는 온종일 숲길을 걸었다.

남도 일원에 이름있는 산들은 열 번 이상을 갔을 것 같다.

멀리가지 못하는 날엔 순천 조계산 편백숲과,광양 백운산휴양림의 황토 맨발길을 걸었다.

 

그 덕분에

6개월 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넘어 24년을 훌쩍넘겨 건강한 삶을 살고 잇다.

우리모두 숲으로 소풍가서 행복스토리 만들고 그 행복에너지로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청한다.

끝으로 숲에서 함께 암을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은 만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건강나눔에 희망드림에  적극 앞장서줄 것을 기대한다.

.

감사합니다.

.

  2018년 7월 19일 밤에    강석진 씀.


김진양
(환자/가족)
축하드리고 건강하세요
2018-06-19 오후 10:22:30 
이건희
(환자/가족)
대단하십니다. 둘다 무서운 암인데 이렇게 이기고 건강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저희들도 힘이 납니다. 용기와 그것을 실천하는 힘으로 우리도 이겨냅시다. 감사합니다.
2018-06-20 오전 8:08:23 
정성왕
(환자/가족)
박수를 보냅니다 ?
2018-07-31 오후 4:06:03 
김순희
(환자/가족)
큰 박수 보냅니다. 정말 위대 하십니다 제 남편도 담낭암인데 의사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2016.12월에 담낭제거,간60%제거 하는 수술 했고 항암치료 3싸이클 까지 했지만 듣는약이 없다고 이제는 삶을 정리 하랍니다. 그런데 요즘 항암치료 안받아서 그런지 밥도 잘 먹고 가벼운 등산도 잘 하고 있어요~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그러나 의사의 선고가 있었기 때문에 무척 걱정이 됩니다. 집에서 치료는 어떤방법으로 하면 좋은지 도와주세요.
2018-08-22 오후 4: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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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서    이제부터 아버지의 치료에 나섭니다.
[상담위원:강성현]    암을 이기는 방법-5(끝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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