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HOME > 암 투병·극복·간병기 > 암 투병·극복·간병기

송지헌 아나운서 간암 극복기
관리자 2017-08-21 오전 10:22:07

“아등바등하지는 않게 그러나 심심하지도 않게 날 찾아주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만 부지런히 지내고 있어요.” 그간의 안부를 묻는 말에 송지헌 아나운서는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느긋한 대답과 달리 최근 그의 활동은 다양하고 활발하다. 각종 주요 특집 프로그램의 사회자에, 특강 강사, 그리고 스피치 컨설턴트로 전국을 바쁘게 누비는 중이다. 지난 달에만도 10여차례 부산으로 출장을 가야했던 강행군. 최근엔 KBS 대구방송과 JTBC에서 정규방송을 하나씩 맡게 되어 더욱 바빠졌다.

송지헌 아나운서 사진1

두 번째 간암, 앞이 캄캄해졌던 순간

30여 년이 넘게 방송을 힘차게 누비던 송지헌 아나운서. 그가 간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방송을 떠났던 것은 2004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정규 아침방송 프로그램 진행 외에 대선 후보들의 TV토론회 사회를 맡는 등 무게감 있는 베테랑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한창 활발히 활동하던 차였다.

“치료를 위해 방송을 잠시 쉬었을 때 여의도에서는 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고 해요. 늘상 보이던 인물이 갑자기 암이라고 하고는 사라지니 다들 놀라기도 했겠죠.”
매일 아침 TV 아침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비추던 건강한 이미지의 그였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 컸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점이 하나 있었다. 당시 그가 받은 암선고가 두 번째 선고였다는 것이다.

“2002년에 정기검진에서 간에서 2~3개의 암 덩어리가 발견되었어요. 크기가 작아서 고주파열치료로 제거했지요. 그러고는 2년이 채 되기 전에 2004년 6월, 정기검진에서 다시 암이 발견됐죠.”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암이 다시 생겼을 땐 그야말로 하늘이 노랬었다고. 발견된 종양은 두 개. 그것도 멀찍이 떨어져 좌엽과 우엽에 하나씩 자리했다. 수술로 잘라내도 두 군데를 잘라내야 할 판이었다. 우선 수술 날짜를 잡아 놓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을 소집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처음 종양 제거를 할 땐 아내에게만 알리고 외부에는 비밀로 했죠. 굳이 요란하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의사의 반응도 그렇고, 설명도 그렇고, 심상치 않더군요. 그래서 모두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암투병은 가족에게 병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 세컨드 오피니언의 중요성

의사인 그의 딸은 당시 레지던트로 종합병원에서 근무 중이었다. 아버지의 암 진단 소식에 그것도 재발 소식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그의 딸.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른 의사도 만나 진단을 다시 받아 볼 것을 권했다.

딸의 성화에 못이겨 그는 처남이 근무하는 신촌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성모병원 등 몇 군데를 더 가서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치료법에 대한 의견이 의사마다 조금씩 혹은 크게 달랐던 것이다. 처음 검진을 받은 곳에서는 부분절제술로 암세포 부위만 떼어내자고 했고, 누군가는 감마선 치료를 권했으며, 다른 곳에서는 간이식 수술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는 다른 주장을 하는 의사들에게 각각의 이유를 물어보았다.
“간 부분절제술을 권한 의사는 간 이식 수술의 위험성을 걱정했어요. 위험한 수술인만큼 보다 안전한 부분절제술을 먼저 시도해보고 간의 상태를 봐서 이식 여부를 결정하자는 의견이었죠. 하지만 간이식을 주장한 의사는 두 번 수술하느니 과감하게 바로 간이식을 하자고 했지요.”
부분간절제수술에 비해 위험요소가 큰 간이식 수술. 여차하면 수술 중 혹은 수술 후에라도 부작용으로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며칠 고민 끝에 그는 가장 교과서적인 방식을 따르라는 딸의 조언을 듣고 간이식을 결정했다. 큰 수술이 두 번이 되느니 한번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결정을 하고 나니 뭔가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 불안한 마음과 별개로 안달복달하는 마음이 가신 것이다.
“생각해보니 의사의 조언에 따라 치료법을 결정하자 환자인 저는 더는 할 게 없더군요. 나머지는 의사를 믿고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는 일 뿐이었어요. 치료법을 제가 결정했으니 잘못되어도 누굴 원망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치료 중에 갈등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지금도 그때 여러 의사를 만나고 여러 의견을 들은 것을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른바 세컨드 오피니언(이차 소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많이 느꼈던 것이다.
“딸 뿐만 아니라 친하게 지내는 다른 과 의사들도 다른 의사들을 더 만나보라고 조언했어요. 의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의사마다 성향과 스타일에 따라 선호하는 치료법이 다르기 때문이죠. 자신과 잘 맞는 의사를 만나는 것도 치료에 중요해요. 신뢰가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가능한 많은 정보를 받을 수도 있고요. 저 역시 의사들을 만나면서 제 상태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내 성향에 맞는 치료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가능한 한 여러 의사를 만나보고 의견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송지헌 아나운서는 그러나 귀 얇게 아무 의견에나 흔들리라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못박는다.
“암환자 귀엔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들려와요. 어디 버섯이 좋고, 어디 물이 좋다는.. 그러나 암을 단번에 낫게 하는 기적의 약은 없어요. 그런 소문은 아무리 유혹적이라도 과감히 잘라내야 합니다. 대신 전문가들을 많이 만나 의견을 듣는 게 좋아요. 전문가들이 권하는 치료법이 서로 다를 수는 있어도 그건 방법의 차이일 뿐이거든요. 그 중에서 치료법을 택하되, 택하고 나면 의사와 나를 믿고 흔들림이 없어야 해요.”

송지헌 아나운서 사진2

긍정은 힘! 나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이식 수술을 결정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국내에서는 아무리 해도 간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족 모두 검사해도 맞는 이도 없었고, 기증된 간은 희귀하기 그지없어서 언제 순서가 돌아올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결국 중국 행을 택했다(당시는 중국에서 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 금지되기 전이었다).

두 번째 암 진단을 받고 꼭 한 달 만의 중국 행이었다. 암도 두려웠고, 타지에서 수술 중 혹은 수술 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두려웠지만, 그는 애써 밝게 행동하고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함께 중국까지 간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라도 기운 빠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작정 기증 장기를 기다리고만 있는 시간. 때론 몰래 아들 친구들과 반나절 관광을 시도하는 등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애썼다. 한정된 시간을 가능한 알차고 밝게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행이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활발하고 거칠 것 없는 성향은 수술 후에도 이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활발하게 몸을 움직였다. 피로하지 않을 만큼씩 운동량을 늘리고, 산책도 자주하면서 모처럼 찾아온 여유를 가능한 밝게 즐겼다. 주변에서는 큰 수술 후에 몸을 너무 움직인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몸을 믿었다. 한번 큰 병에 ‘아차’했을 뿐, 몸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회복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자꾸 상기했다.

암 치료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활발하게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그의 성향이 작용한 바가 크다. 지금도 그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즐기며, 활동 범위를 다양하게 넓히며 일을 하고 있다. 꾸준히 병원에 다니고, 과식이나 외식을 삼가면서 건강을 챙기고 있지만 가끔은 치킨에 맥주 한 잔으로 일탈을 하기도 한다. 이런 활기가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이 암 생존자라는 생각에 갇혀 웅크리고만 있으면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건강을 더 헤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암 생존자에게 이런 낙천성은 흔치 않다. 그는 어떻게 이런 낙관적인 사고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송 아나운서는 ‘자책을 멈추고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것’을 낙천성 유지의 비법으로 소개했다.
“저도 불안하고 우울하고 무서웠죠. 화도 났어요.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런 큰일을 당한다는 자책도 컸고요. 하지만 곧 생각을 달리했어요. ‘감기가 그렇듯 암도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특별히 건강을 챙기지도 못했지만 특별히 몸을 혹사시키거나 괴롭히지도 않았다.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라고 말이죠.”

그렇게 자책을 멈추니, 암에 걸린 상황이 받아들여 졌다. 그렇다고 우울함과 불안이 한번에 날아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겨내기는 훨씬 쉬워졌다고 한다. 때때로 우울함과 불안이 닥칠 때는 애써 좋은 생각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가족과 농담을 하는 등 기분을 바꾸기 위해 애를 썼다. 가장으로서 흔들릴 수 없다는 의지도 큰 몫을 차지 했을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시선을 바꾸니 기특하게도 몸이 따라와 주었다.
“지금도 암환자를 만나면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 탓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그리고 보호자에게도 말해요. ‘그럴 줄 알았다’ 혹은 ‘몸 좀 잘 관리하지’하는 말은 하지 말라고. 벼랑 위에 선 사람에게 자꾸 벼랑을 보라고 할 필요는 없죠. 반대편을 보면서 걸어 나오게 해야지.”
그는 암에 걸린 자신과 화해하는 것으로 벼랑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을 뗐다고 한다.

모든 전쟁의 기본은 경계에서부터! 정기검진이 바로 몸의 경계 활동

그는 암 중에서도 예후가 나쁜 편에 속하는 간암 환자다. 더군다나 위험하다는 재발. 그럼에도 그가 무사히 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건강검진으로 암세포를 일찍 발견한 덕이 크다. 암세포가 손 쓸 수 없이 흉악해지기 전, 딱 그 경계선상에서 잡아냈던 것이다.

그는 원래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다. 서른 살 즈음 몸이 피곤해서 병원에 갔더니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했다. 그 후로 간에 신경써야지 하면서도 바쁜 일상에 묻혀 그냥 저냥 흘러갔다. 그러다가 마흔다섯살쯤 병원에서 간경화 조짐이 있다는 경고를 들게 되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무겁게 몰려왔다. 그 때부터 6개월에 한번씩은 꼭 정기검진을 받았다.

만약 정기검진을 게을리했으면 어땠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다. 그는 정기검진을 ‘전쟁터의 보초서기’에 비유한다. 전장에서 경계를 게을리하면 적군의 움직임을 놓치다가 크게 패할 수 있다. 우리 몸에서 경계 활동은 바로 정기 검진인 것이다. 때문에 40살 이후의 남녀나 암발생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들은 꼭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당부했다.

또한 정기검진 외에도 스스로도 몸의 신호에 귀 기울여서, 자신의 몸과 대화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전한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하죠. 하지만 간도 나쁘면 분명히 몸에서 신호가 와요. 유독 피곤하다던 지 하는 식으로 미세하지만 신호가 오죠. 다른 장기는 더 그렇고요. 몸이 신호를 보낼 때 모르는 척해서는 안됩니다.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호를 무시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어요.”

장기이식으로 치료된 암 생존자 송지헌 아나운서는 현재 대한암협회 부회장이자, 장기기증원 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건강할 때 몸을 더 아끼지 않고 몸의 신호에 더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사후의 몸에 집착해서 장기기증을 주저하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조금은 아쉽다고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건강할 때 자신의 몸에 신경을 쓰고, 아플 때는 몸을 믿는 것. 즉 지금 많은 이들이 몸을 대하는 방식과 정반대로 몸을 대한다면, 암을 비롯한 질병과의 싸움에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힘든 투병 생활 이후에도 에너지 넘치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지헌 아나운서 간암 극복기 - 송지헌 아나운서의 간암 극복기 (암 알아야 이긴다, HIDOC)

댓글쓰기
관리자    간암에 걸린 아내 그리고 100일의 기적
관리자    이해인 수녀의 대장암 극복기
투병 극복기 쓰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