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인편

「고통스러운 것이 나만은 아니야」 - 스기우라 가츠아키/탈랜트((1부)

ピーコこと杉浦克昭さん。ファッション評論家、タレント、シャンソン歌手といくつもの「顔」を持ち、 メディアで活躍するピーコさんは、いまから23年前の1989年、眼のがんにかかりました。 当時44歳。まさに働き盛りのピーコさんの左目を襲ったのは30万人にひとりという悪性腫瘍。 ショービジネスの世界で最前線に立っていたピーコさんは、決断を迫られます。 仕事とがん治療とをどう両立させるのか。 自分の未来に「がん」が立ちふさがったとき、何が救いとなるのか。 働き盛りの皆さんにこそ、読んでほしい。 がんと向き合い、がんと共に生き、働き、がんと決別したピーコさんの言葉です。

がんかもしれない

がんにかかって

がんの診断に至る過程は、がん検診の結果、体調不良、 特定の症状など、ひとによってさまざまです。 がんが不治の病ではなくなったとはいえ、からだの異常に早く気づくことが大切です。

はじめてからだの異変に気づいたのは、44歳の冬、1989年2月の夜のこと。

雑誌の連載原稿を書いているときでした。

「あれ? 原稿のマス目がちゃんと見えない……」

マス目の横線にピントがあわないんです。

いやねえ、疲れ目かしら。

ふと思って、片目をそれぞれつぶって見たら、左目で見たときだけ、

ものが小さく見えてしまう。

左目になにか異常があるのかな、そう思ってまずは眼科のお医者さんを訪れました。

でも、そのときの診断は、

「うーん、重度の結膜炎かな」

「ついでに乱視が入ってますね」

「あ、あと老眼がちょっと進んでいるかもしれませんから、眼鏡でもつくったらどうですか」

というものでした。

その後も特に痛みがあったわけじゃないから、放っておいたんです。

あ、眼鏡はつくりましたけど。

次に病院を訪れたのは、5ヵ月後、8月の最初の土曜日です。

といっても目の異常を感じたからじゃありません。

40歳過ぎた頃からいつもお世話になっている熱海のホームドクターの病院で

毎年1回受けていた人間ドック。

こちらにおすぎと一緒に行ったんです。

そうしたら、その日は偶然眼科の先生がいらしてたんですね。

半年前の一件もあったから、念のため眼底検査をしていただきました。

「うーん、網膜剥離ですね」

放っておくと失明しちゃうかもし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ぐに翌日ホームドクターの紹介で、

とても腕のいい眼科医がいるという小田原市立病院へ行きました。

すると、そこでも偶然が重なって、本来診療日ではなかった先生に診てもらうことになった。

それが佐伯宏三先生(佐伯眼科クリニック院長)です。

とにかく人気のある先生で、朝9時に着いたのに患者の行列ができていて、

診察の番が回ってきたのは昼過ぎの1時頃。

そのとき、佐伯先生は席を外されていて代わりの先生が、

わたしの左目の眼底の写真を撮ってこう言いました。

「たしかに網膜剥離、なんですが、原因がどうやら目の中に腫瘍ができているみたいですね。

腫瘍が大きくなって網膜を突き破っています。

ピーコさんが半年前から左目で見るとものが半分に見えるっておっしゃっていたのは、

この腫瘍が網膜を破って半分しか残ってないからなんです」

通常の眼底検査だけでは、腫瘍が悪いものかいいものかはわからない。

そこで、佐伯先生を待って、直接診てもらうことになりました。

1時間ほどで診察室に入ってきた佐伯先生に調べてもらうと、

「よい腫瘍には見えませんね。造影剤を入れて、もう一度カメラで見てみましょう。

良性だったら毛細血管の色が透けて見えて真っ赤にうつります。黒く見えたら悪性です」

再度撮影した写真を見ながら、佐伯先生が若い先生に話す声が耳に入ってきた。

「周りは赤いけど、真ん中が真っ黒だ。メラノーマだな」

その単語を聞いた瞬間、直接聞かなくてもわかりました。

わたし、「がん」なんだ。

「고통스러운 것이 나만은 아니야」 - 스기우라 가츠아키/탈랜트

피-코와 스기우라 가츠아키 두 개의 이름. 패션평론가, 탤런트, 샹송가수와 몇 개의 "얼굴"로, 미디어에서 활약하는 피코 씨는, 지금부터 23년 전인 1989년에, 안 암에 걸렸다. 당시 44세. 그야말로 한창 일할 나이의 피코 씨의 왼쪽 눈을 덮친 것은 30만 명에게 한 사람이라고 하는 악성 종양. 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최전방에 서 있던 피코 씨는, 결단을 재촉당합니다. 일과 암 치료를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 자신의 미래에 암이 막아섰을 때 무엇이 구원이 되는가? 한창 일할 나이의 여러분이야말로 읽기를 바란다. 암과 마주보고, 암과 함께 살고, 일하고, 암과 결별한 피코 씨의 이야기입니다.

1. 암일지도 몰라

~ 암에 걸려

암 진단에 이르는 과정은 암 진단의 결과, 몸 상태 불량, 특정의 상황 등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암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몸의 이상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비로소 몸의 이변을 깨달은 것은, 44세의 겨울, 1989년 2월의 밤이다.

잡지의 연재 원고를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 원고의 눈금이 잘 보이지 않는데...…」

눈금의 가로선에 초점이 안 맞아.

뭐야, 너무 지쳤나?.

문득 생각하고 한쪽 눈을 각각 감아보니, 왼쪽 눈으로 봤을 때만

물건이 작아 보인다.

왼쪽 눈에 무엇인가 이상이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해 우선은 안과 의사를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진단은

「음, 심한 결막염일까?」

「덩달아 난시가 생겼네요.」

「아, 그리고 노안이 좀 진행될지도 모르니까 안경이라도 만드는 게 어떨까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특별히 아픔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그냥 놔두었어요.

아, 안경은 만들었지만...

그 다음에 병원을 찾은 것은 5개월 후, 8월 첫 번째 토요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눈의 이상을 느꼈기 때문은 아닙니다.

40세가 넘어서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는 아타미의 홈닥터 병원에

매년 한 번 받던 인간 독 (human dock)에 오스기 씨와 함께 갔었어요.

그랬더니 그날은 우연히 안과선생님이 계셨네요.

반년 전의 일도 있었으므로, 혹시 모르니까 눈 밑 검사를 해 주셨습니다.

「음, 망막 박리네요.」

방치하면 실명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다음날 홈닥터의 소개로

아주 솜씨가 좋은 안과의사가 있다는 오다와라 시립병원에 갔었습니다.

그러자, 거기에서도 운이 아주 좋아, 본래 진료일이 아닌 선생님에게 진찰받게 되었다.

그것이 사에키 코조 선생님(사에키 안과 클리닉 원장)입니다.

어쨌든 인기가 있는 선생님으로, 아침 9시에 도착했는데도 환자의 행렬이 이어져 있어서, 나의 진찰 차례가 돌아온 것은 오후 1시경.

그때, 사에키 선생님은 자리를 비우셔서 대리 선생님이

내 왼쪽 눈 밑 사진을 찍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망막 박리, 그렇지만, 원인이 아무래도 눈 속에 종양이 생겨 있는 것 같습니다. 종양이 커져 망막을 뚫고 나왔습니다.

피코 씨가 반년 전부터 왼쪽 눈으로 보면 물건이 반으로 보인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종양이 망막을 찢고 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죠.」

통상적인 안저眼底 검사만으로는 종양이 악성인지 양성인지 알 수 없다.

거기서, 사에키 선생님을 기다리고, 직접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1시간 정도면 진찰실에 들어온 사에키 선생님에게 알아보았더니,

「좋은 종양에는 안 보이네요. 조영제造影劑를 넣고 다시 한 번 카메라로 봅시다.

양성이라면 모세혈관의 색이 비쳐 보이고 새빨갛게 비칩니다. 검게 보이면 악성이에요.」

재차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사에키 선생님이 젊은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주위는 빨갛지만 가운데가 시커멓다. 흑색종이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직접 듣지 않아도 알았어요.

나, "암"이야.

2. 本当にわたしがんなの!?

~がんにかかって

突然だろうと、なんとなく心の準備をしていようと、 がんと診断されれば、やはり心は揺れます。 しかし、そうした状況でも今後の治療など、いろいろと決め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メラノーマは皮膚にできる悪性腫瘍。皮膚がんの一種です。

あまり聞いたことのない言葉でしょう。

罹患率は30万人にひとりというかなり珍しい病気です。

わたしは、たまたまメラノーマにかかった友だちがいたから知っていたんです。

検査を終えると、佐伯先生は言いました。

「まず、家族を呼んできてください」

「来てません。今日はわたしひとりです」

「わかりました、じゃあ、あなたに話しましょう。目医者としては、あなたの目を摘出したくないけれど、放っておくと、左目の腫瘍が視神経から脳に転移し、さらには全身に転移する恐れがあります。するとからだが真っ黒になって死んでしまう。だから取ることをお勧めします。もし、入院する場合は、部屋が空いたらご連絡します。まずは、どうするか帰ってご家族と相談してください」

わたしは即座に言いました。

「先生、わたしの左目、取ってください。目は2つあります。

一つなくなっても、もう一つはまだ見えるんでしょう」

ほう、と、佐伯先生、感心したように声を上げました。

「うむ、あなたのように男らしい人はなかなかいない」

わたしに男らしいだなんて、と内心苦笑していたくらいですから、

その時はあまり動揺していませんでした。

少なくとも自分ではそう思っていた。

この日も一番ショックだったのは、がんを告知されたことじゃなくて、

夜約束していたとあるお気に入りのスターとのお食事を

キャンセルしないといけなかったこと、だったくらいですから。

でもね、そう思っていたのは表面だけで、やはりかなりショックを受けていたんですね。

夕方、病院をあとにして、小田原のうなぎ屋さんで食事をしたんです。

ところが、おいしいかば焼きをいただいたのに味がしない。

「砂を噛むような」という表現があるけれど、

まさになんの味もしない砂をじゃりじゃりとただ噛んでいるような感じ。

味覚が働いていない。

そこで、はじめて実感しました。

「あぁ、わたし、やっぱり、がんなんだ。告知されてショックなんだ」って。

2. 나 정말 암이야?

~ 암에 걸려

갑자기라해도,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역시 마음은 흔들려요.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향후의 치료 등, 여러 가지 결정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멜라노마 (흑색종)는 피부에 생기는 악성 종양으로 피부암의 일종입니다.

별로 들어보지 못한 말이지요?

이환율은 30만 명에 한 사람이라는 아주 희귀한 병입니다.

저는 우연히 멜라노마에 걸린 친구가 있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검사를 마치자 사에키 선생님은 말했어요.

"우선, 가족을 불러주세요."

안 왔어요. 오늘은 저 혼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당신에게 이야기합시다. 눈으로 보면 당신의 눈을 적출하고 싶지 않지만, 방치하면 왼쪽 눈 종양이 시신경에서 뇌로 전이되고 전신으로 전이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몸이 시커멓게 되어 죽습니다. 그래서 눈을 적출할 것을 권합니다. 만약, 입원하는 경우는, 방이 비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우선 어떻게 할지 돌아가서 가족들과 상의해 주세요.

나는 즉석에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왼쪽 눈을 잡아 주세요. 눈은 두개 있습니다.

하나 없어도 또 하나는 아직 보일 것 아닙니까?“

「허」 하고 사에키 선생님, 감탄하신 것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음, 당신처럼 남자다운 사람은 드물어요."

나에게 남자답다며 내심 쓴웃음을 지었을 정도였으니,

그때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어요.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이날도 제일 충격이었던 것은, 암을 고지 받은 것이 아니고,

저녁에 약속했던 어느 맘에 드는 스타와의 식사를

취소해야 했던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표면뿐으로, 역시 꽤 쇼크를 받고 있었더군요.

저녁때, 병원을 나와 오다와라(小田原)의 장어 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맛있는 카바야키(간장 타래 구이)를 먹었는데도 맛이 없다.

「모래를 씹는 것」 같다는 표현이 있는데,

정말로 아무 맛도 없는 모래를 지금지금 씹는 느낌.

미각이 작동하지 않는다.

거기서,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아, 나 역시 암이야. 고지를 받아서 쇼크야.」

3. 左目をとることになって

~ がんにかかって

がんは「不治の病」ではなくなりました。 しかし、がんが人生に大きな影響を及ぼす疾患であることに変わりはありません。 だから悩んで、落ち込んで、でも立ち直って、気がつけば前進しているのです。

取りあえず、がんになったことを家族に話さなきゃ、

ということで、病院から戻った翌日、ふたりの姉に話しました。

メラノーマと診断されたこと、近々入院すること、左目を摘出する手術をすること、

すべてをわたしひとりで決めたことを、ちゃんと説明して、

事前に相談しなかったことを謝りました。

そしたらね、上の姉がわたしの背中をさすりながらつぶやきました。

「神様がこの子の目をひとつ欲しいというならあげましょう。でもそれ以上は望まないで」

それを聞いて、下の姉が

「わたしの目を、代わりにあげたい。わたしはもう何もいらないから」

って言ってくれたの。

下の姉は3歳の頃から脊髄カリエスで不自由な身なのに、

彼女が目をあげたいと言ってくれた。

このときはさすがに、わたし、涙、出そうになりました。

家族に救われた思いでしたけれど、

自分自身に対してはまだ、悲しい、怖い、

という気持ちは、このときはまだあまりなかったんです。

手術まで仕事に穴はあけられませんし、入院中や退院後の仕事の調整をしたり、

友人知人に連絡を取ったり、雑務と実務で普段以上に忙しかったですね。

そのせいか、がんになったことをお友達の永六輔さんに電話でお知らせしたら、

「ピーコ、なんでがんになったのに、そんなに落ち着いて電話かけてくるの。

ほんとに、かわいくないなあ」って言われましたね。

40代でがんになる、というのは結構きついことですけど、

わたしの場合、家族はいるけれど、いわゆる家庭はないですから、

自分のことだけを考えればいい、

という点では悩みが少なか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ね。

つれあいやお子さんがいたら、がんは自分だけの病気じゃなくなりますから。

治療費からその後の生活についてまで、悩みが何倍にも増えますし。

そうそう、当時はまだ「セカンドオピニオン」という考え方は

あまり普及していませんでしたけれど、手術までに2週間ほどありましたから、

一応ほかのお医者さんにも診ていただいたら、

というのは周囲の方たちからたくさんご助言いただきました。

ただ、わたしはこのとき、最初にがんと診断してくださった佐伯先生を信用しよう、

全面的に任せよう、とすぱっと思ったんです。

信頼する熱海のホームドクターの推薦ですし、

なにより、わたしに面と向かって

「わたしは目医者だから、なんとかあなたの目を治してあげたい。

とりたくない。

でも、あなたが死んでしまうのはもっとよくない。

だから左目、とりましょう」

とおっしゃっていただいたのが、とても心に響いたんです。

ああ、この先生に全部お任せしよう、と瞬間的に思いました。

だから、あえてほかのお医者さんには伺いませんでした。

セカンドオピニオンは大切な仕組みですけれど、

一方で自分が身を任せるお医者さんを信じるということも、大切だと思うんです。

3. 왼쪽 눈을 적출하게 되어

~ 암에 걸려

암은 '불치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암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민하고, 침울해져, 하지만 다시 일어서, 문득 깨닫고 보면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암에 걸렸던 걸 가족에게 말해야 하는데,

그래서 병원에서 돌아온 다음날 두 누나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멜라노마라고 진단된 것, 머지않아 입원하는 것, 왼쪽 눈을 적출할 수술을 하는 것,

모든 걸 나 혼자서 결정한 것을, 제대로 설명하고,

사전에 상의하지 않은 것을 사과했습니다.

그랬더니 큰 누나가 내 등을 손으로 더듬으며 중얼거렸어요.

「신이 이 아이의 눈을 하나 갖고 싶다면 드리죠. 그래도 더 이상 바라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작은 누나가

「내 눈을 대신 주고 싶다. 나는 이제 아무 것도 필요 없으니까.」

고 말해줬어.

작은누나는 3살 때부터 척추카리에스라서 불편한 몸인데

그녀가 눈짓을 하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이때는 역시 나 눈물 날 뻔했어요.

가족에게 구함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만,

내 자신에 대해서는 아직, 슬프다, 무섭다,

하는 마음은 이때는 아직 별로 없었습니다.

수술까지는 일에 구멍이 뚫릴 수 없고, 입원 중이나 퇴원 후의 일을 조정하거나, 친구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잡무와 실무 때문에 평소 이상으로 바빴네요.

그래서 그런지, 암에 걸린 것을 친구인 에이로쿠 스케 씨에게 전화로 알렸더니,

「피코, 암에 걸렸는데도 그 어찌 이렇게 차분하게 전화해?

정말, 귀엽지 않네」라고 말했었죠.

40대에 암에 걸린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지만

저의 경우, 가족은 있지만, 이른바 가정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면 되니까!,

라는 점에서는 고민이 적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배우자나 아이가 있으면, 암은 자신만의 병이 아니니까요.

치료비에서 그 후의 생활에 대해서까지, 고민이 몇 배나 증가하구요.

맞아 맞아, 당시는 아직 "세컨드 오피니언"이라는 생각은

그다지 보급되어 있지 않았지만, 수술까지 2주 정도 있었으므로,

일단 다른 의사에게도 진찰을 받아 본다면 어떨까 하는 말로 주위 분들로부터 많이 조언을 받았습니다.

단지, 저는 이 때, 처음에는 암이라고 진단해 주신 사에키 선생님을 신용하자,

전적으로 맡기자고 시원하게 생각했거든요.

신뢰하는 아타미의 홈닥터의 추천이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맞대 놓고

「나는 안과의사라서, 어떻게든 당신의 눈을 고쳐 주고 싶다.

수술하기 싫다. 하지만, 당신이 죽어 버리는 것은 더 좋지 않아.

그러니까 왼쪽 눈, 적출합시다.」

하고 말씀하신 게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아, 이 선생님한테 다 맡기자고 순간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굳이 다른 의사를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세컨드 오피니언은 중요한 시스템입니다만,

한편으로 자신이 몸을 맡기는 의사를 믿는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 わたしの一部がなくなっちゃう

~がんからの復帰

手術を決断すると、今度は現実と、そして自分と向き合うことになります。 がん治療という、自身の具体的なマネジメントを始めることで、 再び前に進むためのマインドセットが必要になります。

がんの告知から2週間後、わたしは小田原の病院に入院しました。

入院から手術までの間、お見舞いのひとがたくさん来てくださいました。

若くてかわいい看護婦さんたちともすっかり仲良くなりました。

なぜかだんだんハイな気持ちになって、毎日毎日わいわい騒いでいました。

手術の前日にもお友だちが来てくれて、

そのときはさすがにちょっとほろりとしました。

けれども、涙はでませんでしたね。

自分でもびっくりするくらい、動揺は影を潜めていたんです。

いよいよ明日が手術という日の夜。

みんなが帰ったあと、消灯時間になって、真っ暗な病室の窓の外を眺めていたら、

山の向こうに花火が上がるのが見えたんです。

小田原の病院だったから、山ひとつ向こうが箱根なのね。

夏の芦ノ湖の花火だったんです。

遠い花火。

だから、音がせずただ、光るだけ。

静かに打ちあがって、静かに花開いて、静かに消える。

ひときわ高くあがった花火が3つ、音もなくぱっと広がって、消えたとき。

ふと思いました。

わたしの左目が、花火を見られるのも、これが最後なのね。

急に涙が湧いてきました。

そのときが最初で最後です。

これから無くなる 自分の左目のために泣いたのは。

4. 나의 일부가 없어져 버렸다.

~ 암으로부터 복귀

수술을 결단하면, 이번에는 현실과, 그리고 자신을 대면하게 됩니다. 암 치료라는, 자신의 구체적인 매니지먼트를 시작함으로써,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게 됩니다.

암의 고지로부터 2주일 후, 나는 오다와라 시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부터 수술까지 사이에 문병 차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젊고 귀여운 간호사들과도 많이 친해졌습니다.

어쩐지 점점 더 기분이 고조되어 매일 매일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습니다.

수술 전날에도 친구가 와서

그 때는 역시 눈물이 조금 고였습니다.

하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네요.

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마음의 동요는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내일이 수술이라는 날의 밤.

모두가 돌아간 후, 소등시간이 되어 깜깜한 병실의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산 너머로 불꽃이 솟는 것이 보였어요.

오다와라 시의 병원이었으니까, 산하나 넘어 저쪽이 하코네(箱根)야.

여름의 아시노 호수(芦ノ湖)의 불꽃놀이였죠.

아주 먼 불꽃.

그러니까, 소리가 나지 않고 단지 빛만 날 뿐. 조용히 피어올라 조용히 꽃피우고 조용히 사라진다.

한층 더 높게 오른 불꽃이 3개, 소리도 없이 확 퍼지고는, 사라졌을 때.

문득 생각났어요.

내 왼쪽 눈이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이제부터 없어지는 자신의 왼쪽 눈 때문에 운 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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