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동행하며 ~ 가족편 2부

04 治療の選択で心掛けたのは、本人の個性を尊重すること

がんの治療に関して、どの道を選ぶべきか? どんな治療を選択するのか? がん治療に関する説や情報は膨大にあります。 でも実際に選べるのはたったひとつ。 私たち家族が、いちばん大切にしよう、と決めたこと。 それは、父が選んだ道を最優先しよう、ということでした。

 家族で父の日常をサポートする一方で、いちばん重要なのは、やっぱり、どんながん治療を選択するのがベストだろうか、ということです。

 ところが、これがそう簡単にはわからないんですよね。あらためて調べてみると、がんの治療については、諸説が入り乱れていて、さまざまな分野の書籍が書店に並んでいますし、インターネットで検索すると、あれがいい、これはダメだ、ともっともらしいものから怪しげなものまで、いろいろな治療法がひっかかります。

 最初は、いったい何を信じればいいのか、情報収集係の私も、全然見当がつかなくなってくる……。情報の海に溺れちゃいそうになる、というか。

 なので、もう一度、最初のお医者さまの診断から順繰りに理解することにしました。

 「ステージIVの胃がん」ってどんな病状なんだろう。

 ステージIVの患者さんの生存率はどの程度で、どんな治療の選択肢があるんだろう。

 という具合に、入り口から順番に調べていきました。本もたくさん読みました。もちろん主治医のお医者さまにも、可能な限り質問を投げ掛けました。

 そうやって、まったくの素人の状態から順番にがんについて調べていくうちに、「標準治療」という考え方があるのを知りました。がんに詳しいひとだと、誰もが知っている単語ですけれど、私自身は、父ががんになるまで、聞いたこともありませんでした。そもそも、「標準」ってなんだろう? って感じでしたから。

 本を読んだら、「標準治療」が科学的な根拠に基づいた現在の医療で確立している最善の治療法のこと、というのはすぐにわかりました。

 ただ、そこから先がちょっとややこしくて、他の治療法が病院で全部否定されているかというとそうでもなくて、一般的な医療機関でも「標準治療」以外のオプションの治療を選択できるケースも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ました。

 オプションが選べる、となると、こちらもまた迷うわけです。もしかしたら標準治療よりそっちのほうが治る確率が高くなるんじゃないかしら、と。じゃあ、そんなオプションのある医療機関がどこにあって、どんなプラスアルファの治療ができるのか、いったいどれぐらいの金額が掛かるのか、こうしたことも書籍とネットを駆使して調べていったんですね。

 一方で治療方法を模索していた頃の父は、いつになく迷っているように、私には見えました。

 父は、自分のことは自分で完璧に段取るのが大好きなタイプで、サラリーマン時代の仕事ぶりもそうだった、と同じ会社の方に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だいたい、自分ですぐに「エンディングノート」をつくり始めちゃう、というのも、父らしさの表れだと思うんです。

 これまでの父のやり方だと、病院もお医者さまも治療法も自分で全部選ぶぞ、となるはずなんです。けれど、それが、そうならなかった。

 お父さんは心の奥底で迷っ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

 そう思わされたのは、はじめてのことでした。

 がんにかかったことに対しては、こちらがびっくりするくらい動揺を見せなかった父ですけれど、どの病院に行こう、どの治療を選ぼう、ということについては、いつもの父らしくなかった……。自分で選ぼうとしない、というか、どことなく選べていない……。

 父はそのとき、不思議なぐらい私たち家族の提案に素直に耳を傾けてくれたんですね。それがいっそう、父の混乱を象徴しているようにも見えました。

 病院を訪れてお医者さまの話を聞いて、あらゆることを調べ、兄弟や母とも話し合いながら、父と向き合っていくうちに、本来父は自分で決めたい人なんだということを、あらためて思い出すようになりました。ああ、やっぱり、お父さんは自分で決めたいんだろうな、いまはちょっと混乱してるけど、最後は自分で決めて、その道を信じて進みたいんだろうな、ということがわかってきたんです。

 だったら、病院もお医者さまも治療法も、父がうまく自分で選べるようにサポートする側にまわろう、その上、いったん父がこうと決めたら、一切口を挟まないようにしよう、と。

 「こうしたほうがいいんじゃないか」ということは言わないようにしようというのが、家族の間の暗黙の了解事項になりました。

 父が決めた道を、私たちが信頼する。それでいいんだと。

 もちろん、家族としては心配なことがいっぱいあるし、迷うときもありますよね。もっといい治療方法があるんじゃないのか、ほかの病院の方がよかったんじゃないか、って具合に。

 ただ、がんの治療にはさまざまな選択肢があっても、実際に選べる道はその都度ひとつしかないですから、だったら、そのひとつの道は父に選んでもらおう。それが父にとって幸せなことじゃないか、と私たちは思うようにしたんです。

 父の性格を考えると、その点についてはいまでも間違いではなかったと思っています。映画『エンディングノート』でも「衆知を集めて一人で決める」という父の言葉が出てきますが、そういうやり方そのものが父の個性でしたし、生き方でしたから。

4. 암 치료의 선택에서 유의한 것은 본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

암 치료에 관해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어떤 치료를 선택할 것인가? 암 치료에 대한 설이나 정보는 방대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우리 가족이 가장 소중하게 마음먹은 것 그것은 아버지가 선택한 길을 최우선시하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으로 아버지 일상을 지원하는 한편,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어떤 암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일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 이것이 그리 간단하게는 알 수 없는 것이군요. 재차 조사해 보면, 암의 치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뒤섞여 있고, 다양한 분야의 서적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그것은 좋다, 이것은 안 된다, 라고 아주 그럴듯한 것부터 수상한 것 까지 다양한 치료법이 걸린다.

 처음에는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정보수집 담당인 나도 전혀 짐작이 안 간다는, 즉 정보의 바다에 빠질 지경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첫 번째 의사의 진단부터 차근차근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4기의 위암"은 어떤 병의 상태일까?

4기 환자의 생존율은 어느 정도이며 어떤 치료의 선택지가 있을까?

라고 하는 상태로, 처음부터 차례로 조사해 갔습니다.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물론 주치의에게도 가능한 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완전한 아마추어 상태로부터 차례로 암에 대해 조사해 가는 사이에, "표준치료"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암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단어이지만, 제 자신은, 아버지가 암에 걸릴 때까지,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표준"이 뭐지? "표정" 이었으니까.

 책을 읽으면 '표준치료'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현재의 의료로 확립된 최선의 치료법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거기서부터 들어가면 조금 복잡하고, 다른 치료법이 병원에서 전부 부정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고, 일반적인 의료 기관에서도 "표준 치료"이외의 옵션의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케이스도 있다,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쪽도 또 헤매는 것입니다. 어쩌면 표준 치료보다 그 쪽이 나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라고. 그럼, 그런 옵션이 있는 의료 기관이 어디에 있고, 어떤 플러스알파의 치료를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금액이 드는지, 이러한 것도 서적과 인터넷을 이용하여 조사하였다.

 한편으로 치료 방법을 모색하고 있을 무렵의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내게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으로, 샐러리맨 시대의 일하는 모습도 그랬다고 같은 회사의 사람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자신이 곧바로 "엔딩 노트"를 만들기 시작해 버린다는 것도, 아버지다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아버지 방식이라면, 병원도 의사도 치료법도 전부 스스로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음 깊은 곳에서 방황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암에 걸린 것에 대해서는, 내가 놀라울 정도로 동요를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입니다만, 어느 병원에 가자, 어느 치료를 선택하자, 라는 것에 대해서는, 평소의 아버지답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할까, 어쩐지 선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때 신기할 정도로 우리들 가족의 제안에 순순히 귀를 기울여 주셨죠. 그것이 더 한층 아버지의 혼란을 상징하는 듯 보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 이야기를 듣고 모든 걸 다 뒤져 보고, 형제들과 어머니와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를 마주 보고 가는 동안에 아버지는 원래 스스로 알아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란 걸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아, 역시 아버지는 스스로 결정하고 싶으시겠지만,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결정하고, 그 길을 믿고 싶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병원도 의사도 치료법도, 아버지가 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측에 돌리자, 게다가, 일단 아버지가 이렇게 결정하면, 일절 간섭하지 않도록 하자, 라고.

 「이런 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은 하지 말자는 게 가족 간의 암묵적인 양해사항이었어요.

아버지가 정한 길을 우리가 신뢰한다. 그러면 된다고.

 물론, 가족으로서는 걱정되는 일이 많이 있고, 헤매는 때도 있지요. 좀 더 좋은 치료 방법이 있는 건 아닌지, 다른 병원이 더 좋았던 건 아닌지. 라는 방식으로.

 단지, 암의 치료에는 다양한 선택사항이 있어도,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 때마다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 하나의 길은 아버지가 선택하도록 한다. 그게 아버지에게 있어서 행복한 일이 아닐까, 라고 우리는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엔딩 노트」에서도 중지를 모아 혼자 결정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나오는데, 그런 식 자체가 아버지의 개성이었고 사는 방식이었으니까요.

05 専門家と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は「信じる」ことから。

本人はもちろんですが、家族にとっても、がんと向き合う上で、 主治医の先生と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は欠かせません。 私たちの場合、質問を整理し、先生と話す貴重な時間を最大限に生かすようにしました。 プロであるお医者さまのお話をいかに日々の生活にうまくフィードバックするか。 患者本人にとっても、家族にとっても、具体的な行動指針になりますし、大きな支えになるはずです。

 がんにかかった父をサポートする私たち家族として、なによりの情報源は、やはり主治医のお医者さまです。だからこそ、お話を伺うときにはすごく気を遣いました。

 一番気をつけたのは、事前に質問を手短にわかりやすく整理しておくこと、でした。お医者さまとお話しできる時間は限りがありますし、質問があやふやだと、本当に必要な答えをいただけない。

 とはいっても、こちらとしては、がんと向き合うのははじめてですから、知識も経験も何もないわけで、不安や疑問がどんどん浮かんできてしまう。だからといって、そのときの不安をただお医者さまにぶつけてもしょうがない。とにかく聞きたい質問を落ち着いて整理するよう努めました。

 私がとりわけ意識したのは、なるべく具体的な行動につながる質問を用意することでした。普段の生活で、家族はどんなことを心掛けてサポートすればいいのか、ご飯はどんなものを用意すればいいのか、睡眠時間は、外出はどの程度大丈夫なのか、という具合です。こうした質問ならば、すごくストレートな回答をいただけますし、日々の行動にもすぐに役立てられますから。

 患者である父も、お医者さまに対する質問はずいぶんと絞り込んでいた記憶があります。父をすごいな、と思ったのは、自分が身を任せたお医者さまを全面的に信頼しようと決めていたところです。どの病院にしようか、どのお医者さまにしようか、どの治療法にしようか、についてはずいぶん悩んだ様子でしたし、最終的には自分で決めた父ですが、いったん決めたとなったら、そのお医者さまを徹底的に信じる。

 これって父のサラリーマンとして働いてきた美学なのかな、とも思いました。いろいろなひとと仕事をするとき、私がやっている映画の世界でもそうですけれど、自分が信頼されてないと感じたら、パフォーマンスって下がりますよね、やっぱり。

 信じるってことが本質的にいちばん重要なんだ、って父は考えていたんだと思います。お医者さまとのやり取りの中で、本当に素直に耳を傾けている父を見ていて、そう思いました。

 ただ、いまでも心残りなことがあって、それはがん治療を受けている病院とお医者さま以外に、専門家による心理的なサポートやアドバイスを得られる機会を得られなかったことです。最期の瞬間を迎えるにあたって、相談できる医療従事者が近くにいなかった。

 がんと長期にわたって闘っている方のためには、例えばホスピスのような終末医療のための施設があります。父の場合、ホスピスの利用を具体的に考える前に、病状が一気に悪化して入院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それが年末の2009年12月25日のクリスマス。最後はなんとか家に戻してあげたいとも思いましたが、入院してからわずか5日後、家族みんなに看取られるかたちで、病院で一生を終えました。

 最後まで意識はしっかりしていました。みな父といろいろな話を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し、幸せな終わり方だったと思っています。

 でも、わずか数日でも本当に家に帰してあげる方法はなかったのか、いまでもその点について考えるときはあります。

 父はそれまで、それこそサラリーマンらしく「病院で死ぬのって現代では自然なことじゃないの」と言っていましたが、やはり最後の最後は家に帰りたそうだったから。ちょっとでいいから、家に帰してあげたかったな……って。

 私たちもできる限りのことをしてあげられたとは思ってるんですが、いろいろなことがあまりに急で、対応しきれなかった部分もある。その具体的な方法を尋ねられる人も、時間的余裕もなかった。だから全部家族だけで決断して、その方法までを用意しなくてはいけないっていうのは、正直難しい部分がありました。もし、死にひんした患者をもつ家族が具体的なことを頼ったり、相談できる専門家がそばにいてくれたなら、どんなに有り難かったかな、というのは、いま振り返って思うことではあります。

5. 전문가와의 의사소통은 「신뢰하기」에서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에 있어서도, 암과 마주하는 데 있어서, 주치의 선생님과 의사소통은 필수입니다. 우리의 경우, 질문을 정리해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귀중한 시간을 최대한으로 살리도록 했습니다. 프로인 의사의 이야기를 얼마나 매일의 생활에 잘 반영하는가? 환자 본인에게 있어서도, 가족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되고, 큰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암에 걸린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는 우리 가족으로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정보원은 역시 주치의 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을 때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가장 주의했던 것은, 사전에 질문을 간략하고 알기 쉽게 정리해 두는 것 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질문이 애매모호하다면, 정말로 필요한 대답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쪽으로서는, 암과 마주 싸우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지식도 경험도 아무것도 없는 셈으로, 불안이나 의문이 자꾸 떠오르곤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때의 불안을 단지 의사에게 부딪혀 봐도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듣고 싶은 질문을 침착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특별히 의식한 것은, 가능한 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되는 질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생활에서, 가족은 어떤 것을 배우고 지원하면 좋은지, 밥은 어떤 것을 준비하면 좋은지, 수면시간은 외출은 어느 정도 괜찮은지 하는 상태입니다" 라는 질문이라면, 매우 직설적인 대답을 받을 수 있고, 매일의 행동에도 곧바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인 아버지도, 의사에게 대한 질문은 범위를 좁혀가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겼던 것은 자신의 몸을 맡긴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어느 병원으로 할까, 어느 의사로 할까, 어느 치료법으로 할까에 대해서는 꽤 고민한 모습이었고,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정한 아버지입니다만, 일단 정하게 되면, 그 의사를 철저히 믿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샐러리맨으로 일해 온 미학인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사람과 일을 할 때, 제가 하고 있는 영화의 세계에서도 그렇지만, 자신이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퍼포먼스는 떨어집니다. 역시.

 믿는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아버지는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정말 솔직하게 듣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단지, 지금까지도 아쉬움이 있어, 그것은 암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과 의사 이외에, 전문가에 의한 심리적인 지원이나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상담할 수 있는 의료 종사자가 근처에 없었다.

 암과 장기에 걸쳐서 싸우는 분을 위해서는, 예를 들면 호스피스와 같은 종말 의료를 위한 시설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호스피스 이용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연말인 2009년 12월25일의 크리스마스.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집으로 모시고 싶다고도 생각했지만, 입원한지 불과 5일 만에 가족 모두가 함께 보내는 형태로, 병원에서 일생을 끝냈습니다.

 끝까지 의식은 확고했습니다. 여러분 아버지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며, 행복한 종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 며칠이라도 정말로 집으로 모시는 방법은 없었던 것인지, 아직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할 때는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전까지는, 그야말로 샐러리맨답게 「병원에서 죽는다니 현대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습니다만, 역시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집에 돌아온 것 같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괜찮으니까, 집으로 모셨더라면. 하였다.

 저희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가지가 너무 급해서 대응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묻을 사람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까 전부 가족끼리 결정을 내리고 그 방법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만약, 죽어 버린 환자의 가족이 구체적인 것을 의지하거나 상담할 수 있는 전문가가 곁에 있어 주었다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라고 하는 것은 지금 되돌아보며 생각하는 바입니다.

06 父のがんを通じて、私が変わったこと

映画『エンディングノート』では、父の人生を描きたかったわけではなく、 あらゆる人が抱える“人生の限り”を表現したかったんです。 家族として、父のがんと向き合い、看取る。 人生の終わりを意識するというのは、 「死と向き合う」ことではなく「よく生きる」ことにつながるんだ、と今でも思っています。

 父はがんを宣告されてから、半年で亡くなりました。振り返ってみると、わずかな時間でしたが、本当に濃密な時間でした。もちろん、なんとかがんを克服してほしかったし、もっともっと長生きをしてほしかった、と思っています。いまでも、思ってます。

 ただ、父が亡くなった、ということについては悲しいし、悔しい思いもあるけれど、父と私たちが、父のがんと向き合ってきた道筋についての後悔は、……ないですね。

 なぜかというと、それはやっぱり、父の意志を最初から最後まで尊重できたから、だと思います。主治医のお医者さまに対しても、治療法を選ぶのも、最後まで父に任せることができましたし、亡くなるまでの半年間は、父がいま一番やりたいことに耳を傾けながら、思い出をつくった。

 私の映画の中に「To doリスト」という、「孫と遊ぶ」とか「家族旅行に行く」というような、まるで父が自ら書いた「死ぬまでにしたいことリスト」に見える箇所があるんですね。なので勘違いされる方が多いんですが、あれは父ではなく、映画の演出上、私が書いたものなんです。

 父自身が死ぬまでにしたいことなど、何ひとつなかった。

 少なくとも私たち家族がそれを求められることはなかったんです。

 けれど最後の半年の濃密さと、これが最後かもしれないという緊張感は、何ものにも代え難い日々で、それを父の死後振り返ったときに、「お父さんて、まるで人生最後のTo doリストをこなしてたみたいだなぁ」と思ったところから、私がそういうふうに演出したにすぎません。

 父が亡くなる少し前に昔からの友人と会ったときのことを後で聞いたんですが、身体は痩せているのに、父はいつもと変わらず心底楽しそうだったそうです。そういう最後の姿を私たちに見せてくれたことに対して、父に感謝しています。一日一日を無駄にせず、生きるってどんなことなんだろう、というのを一番近い場所で知ることができましたから。

 一方で思うのは、がんにかかって、いかに闘病するのか、どうやって日々を過ごすのか、どう家族は対応すればいいのか、というのは、ものすごく個別の問題で、一般化するのは難しいということです。

 父と病院で濃密な時間を過ごすことができたのも、父の意識が最後まではっきりしていたから、です。父の闘病生活が1年2年と長引いたら、私たち家族のサポートの仕方もまったく違うかたちになっていたでしょうし、もっとシビアで大変なことが、金銭的な面もふくめて、いろいろあったと思います。寝たきりになったら介護のかたちだって、まったく変わってきますよね。家族だって、そうなるとストレスがたまってくるだろうし、疲労もたまるだろうし……。

 そもそも、がんにかかったご本人と家族の関係も、ひとによって全然違います。うちの家族はもともと互いにたくさん話をするほうだったので、父ががんにかかってからも、みんなで話し合って、時には争いをして、役割分担を決めたり、誰かが落ち込んでいたら、サポートしたり、というやり方が、比較的自然にできた、ということがあると思います。

 けれど、自分たちが父や父の病気と、こういう関わり方をしましたということは、ひとつのケースにすぎないと思うんです。一般化は決してできない。それは強く自覚しています。

 例えば必ずしも家族同士、兄弟同士の仲がいいとは限らないでしょうし、物理的にご家族が近くにいらっしゃらないケースだってありますよね。家族に先立たれてひとりぼっちという方や、そもそも結婚していなくて近親者がいない、という人だっているでしょうし……。

 ただ、それでも思うんです。どんな人も、それまで生きてきた人生というのが必ずあるわけで、もしがんになって、自分が死に向き合うとなったら、自分の人生って、どんなものだったんだろう、って人は必ず考えると思うんです。たぶん、私もそうします。

 そのとき、もし家族がいなかったり、腹を割って話せる友人がいなかったとして、じゃあ、その人に救いがないかっていうと、その人が送ってきた人生の中で、その人にとっての大切なこと、救いになるものは、必ず何かあるんじゃないかなって思うんです。断言はできないですけど、そうであると信じたい。

 その対象は必ずしも人間である必要はないのかもしれない。人によっては、本、かもしれないですし、音楽が好きな人だったら誰かの音楽かもしれないし、映画をつくっている私としては、映画だっていざというときに人を支えてくれるんじゃないか、とも思います。

 家族が不在だと、親しい人が近くにいないと、がんに、病気に向き合えない、ということはないし、人間はもっと強いものなんじゃないかと。

 天涯孤独な人ががんにかかって、その人の最大の楽しみが本を読むことなら、病の床にあっても本を読むことが支えになる。でも、がんが進行して、好きな本が読めなくなって、というときにはじめて、その人のために傍らで本を読んでくれる人が現れる、ってことだってあるんだと思います。

 それぞれの人生には、かけがえのないものが、何かあるはずで、それは家族かもしれないし、友人かもしれないし、芸術かもしれないし、自然かもしれない。

 うまく言えないですけれど、そんな自分にとってのかけがえのないものは何なのかを探し続けること。そしてそれに最後まで寄り添い、寄り添ってもらうこと。それが「がんと共に生きる」ときに、ものすごく大切なんじゃないかと、思っています。

砂田麻美(すなだ まみ)氏 プロフィール

映画監督

1978年生まれ。慶應義塾大学総合政策学部在学中からドキュメンタリーを学び、映画製作に携わる。卒業後はフリーの監督助手として、河瀨直美、岩井俊二、是枝裕和らの製作現場に参加。2009年にがん告知を受けた父の最期にカメラを向けた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エンディングノート』を製作。2011年に一般公開され、監督デビュー。同作は高い評価を受け、第33回ヨコハマ映画祭新人監督賞・第35回山路ふみ子映画賞文化賞・第52回日本映画監督協会新人賞・第36回報知映画賞新人賞・第26回高崎映画祭若手監督グランプリ・芸術選奨文部科学大臣新人賞映画部門を受賞。小説に『音のない花火』(ポプラ社刊)。

6. 아버지의 암을 통하여 내가 변한 것.

영화「엔딩 노트」에서는, 아버지의 인생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온갖 사람들이 안고 있는 "인생의 한계(수명)"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가족으로서 아버지가 암과 마주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인생의 마지막을 의식한다는 것은, 「죽음과 마주한다.」는 것이 아니라 「잘 살자」로 연결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암을 선고받은 후 반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뒤돌아보면,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정말로 농밀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어떻게든 암을 극복해 주길 바랐고, 더욱 더 오래 살기를 바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슬프고, 분한 생각도 있지만, 아버지와 우리가 아버지의 암을 마주하고 왔던 길에 대한 후회는 없네요.

 왜냐하면 그것은 역시 아버지의 의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존중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치의에 대해서도, 치료법을 택하는 것도 끝까지 아버지에게 맡길 수 있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반년 동안은 아버지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경청하며 추억을 만들었다.

 제 영화들 중에 「To do 리스트」라는, "손자와 놀다"나 "가족여행을 간다."라는 것 같은, 마치 아빠가 스스로 쓴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것 리스트"로 보이는 부분이 있군요.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들 가족이 그것을 요구받지는 않았답니다.

하지만 마지막 반년의 농밀함과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날로, 그것을 아버지의 사후 되돌아보았을 때에, 「아빠는, 마치 인생 마지막 To do리스트를 구사했던 것 같다」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내가 그렇게 연출했던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조금 전에 옛 친구를 만났을 때를 뒤늦게 들었는데 몸은 늘 몸이 말랐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마음속 즐거워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마지막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에 대해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어요.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지 않고, 사는 게 어떤 건지, 라는 것을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알 수 있었으니까요.

 한편으로 생각하는 것은, 암에 걸려, 어떻게 투병할지,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낼지, 어떻게 가족은 대응하면 좋을지 라는 것은, 엄청나게 개별적인 문제로, 일반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병원에서 농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의 의식이 마지막까지 뚜렷했기에 말입니다. 아버지의 투병생활이 1년 2년으로 길어지면, 우리 가족의 수발방법도 완전히 다르게 되어 있었을 것이고, 더 중증으로 힘든 일이, 금전적인 면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침대 신세만 지게 되면 개호의 형태로 지원이 완전히 달라지겠지요. 가족도 그렇게 되면 스트레스가 쌓일 거고, 피로도 쌓일 거고...

원래 암에 걸린 자신과 가족의 관계도 사람마다 전혀 다릅니다. 저희 가족은 처음부터 상호간에 많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으므로, 아버지가 암에 걸리고 나서부터도 모두 서로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역할분담을 정하거나, 누군가가 기가 죽어 있으면 지원을 하거나 하는 방법이 비교적 자연스레 되었다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아버지나 아버지의 병과 이렇게 관련되는 방법을 했다는 것은, 하나의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반화는 결코 할 수 없다. 그것은 강하게 자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드시 가족과 형제간에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고, 물리적으로 가족이 근처에 계시지 않는 사례도 있지요. 가족을 앞서서 보내고 혼자 사는 분이나, 원래 결혼 안 해서 근친자가 없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냥 그렇게도 생각해요. 어떤 사람도 그때까지 살아 온 인생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는 셈으로, 만약 암에 걸리어, 자신이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면, 자신의 인생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라고 사람은 반드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도 그렇게 할 거예요.

 그 때, 만약 가족이 없거나 속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고 해서, 그럼, 그 사람에게 구원이 없을까 하면, 그 사람이 보내 온 인생 중에서, 그 사람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 구원이 되는 것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닐까? 단언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 대상은 반드시 인간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선 책일 수도 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음악일 수도 있고, 영화를 만드는 저로써는, 영화도 일단 유사시에 사람을 지탱해 주는 것이 아닌가, 라고도 생각합니다.

 가족이 없으면, 친한 사람이 근처에 없으면, 암과 병에 마주할 수 없는 것 이라는 것은 아닐뿐더러, 인간은 더 강한 것이 아닐까?

천애고독한 사람이 암에 걸렸는데 그 사람의 최대의 즐거움이 책을 읽는 것이라면, 병상에 있어도 책을 읽는 것이 의지가 된다. 그렇지만 암이 진행되어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될 때를 비롯하여, 그 사람을 위해 곁에서 책을 읽어줄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인생에는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무언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으며, 예술일 수도 있으며 자신일 수도 있다.

멋있게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자신에게 있어서의 대체 불가한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 찾는 것. 그리고 거기에 끝까지 달라붙어, 다가가는 것. 그것이 「암과 함께 살」 때에, 굉장히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나다 마미 씨의 프로필 : 영화감독

1978년 출생. 게이오 의숙대학 종합정책학부 재학 중에 다큐멘터리를 공부하여, 영화제작에 관여하다. 졸업 후에는 프리랜서 감독 조수로 영화제작에 참여. 2009년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최후를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 노트」를 제작. 2011년에 일반에 공개로 감독 데뷔. 이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아 제33회 요코하마 영화제 신인 감독상. 제35회 야마지 후미코 영화상 문화상. 제52회 일본영화 감독협회 신인상. 제36회호치영화상 신인상. 제26회 다카자키 영화제 젊은 감독 그랑프리 .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 신인상 영화 부문을 수상. 소설로는 「소리 없는 불꽃」 (포플라 사 간행)

저작권자 © 암스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